우리가 자연의 SOS에 답해야 합니다.
놀랍도록 다양한 생명을 보존하려는 것은
단순히 자연에 대한 윤리적 의무나 감성적 이유 때문만이 아닙니다.
바로 80억 인류의 미래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세계자연기금(WWF) 지구생명보고서 2020>
외래종 토끼 몇 마리가 드넓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초원을 50년만에 황폐화시킨 일은 인간의 과도한 자연 개입이 예상치 못한 재앙을 불러올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면, 양쯔강돌고래는 인간 활동 그 자체만으로도 다른 생명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까지 5,000여 마리 수준이었던 양쯔강돌고래가 중국의 산업화로 양쯔강이 전력 생산과 수송 통로로 이용되고, 어류 남획까지 더해져 10여 마리로 줄어드는 데는 불과 50여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2006년 결국 양쯔강돌고래는 멸종이 공식적으로 선언되었고, 그 이듬해인 2007년 부랴부랴 ‘돌고래의 해’를 선포하여 이미 사라진 돌고래를 기념하였다.
놀이삼아 사냥하던 여행비둘기. 결국 1914년 멸종하였다.
더 비참한 사례는 미국의 여행비둘기이다. 19세기 중반 50억 마리로 조류 단일종으로는 지구에서 가장 많은 개체수로 추정되던 여행비둘기 가 노동자들의 값싼 식량과 부자들이 놀이삼아 즐기던 사냥으로 불과 수십 년만에 멸종되었다. 누가 한번에 가장 많이 잡는지 내기까지 벌어졌고, 한번에 800마리를 잡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저 사람들은 유희삼아 여행비둘기를 사냥하였다. 여행비둘기가 무리지어 이동할 때는 하늘을 다 덮었다지만 그 많던 개체가 이토록 짧은 시간에 멸종되리라고 그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기 시작한 1907년 뉴욕시는 여행비둘기를 사격장의 산 표적으로 쓰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이미 멸종으로 향한 임계점을 넘어섰고, 결국 1914년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사육되던 마지막 개체가 죽으면서 완전히 멸종하였다.
스텔러 바다소는 인간에게 발견된지 불과 27년만에 멸종하였다.
대형 바다 포유류였던 스텔러 바다소 의 경우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아주 짧은 시간에 멸종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덴마크 출신 탐험가 비투스 베링이 이끄는 캄차카 탐험대가 1741년 코만도르스키 제도의 무인도인 베링 섬에서 좌초되었다. 탐험대의 반 이상이 죽고 생존한 탐험대의 일원인 게오르그 빌헬름 스텔러(Georg Wilhelm Steller)가 작성한 보고서에는 그 섬에 살고있던 거대한 바다소의 존재가 포함되어 있었다. 고기는 송아지 고기맛이었으며, 기름은 아몬드 기름 같았고, 가죽은 고급 모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그의 관찰기는 금세 소문이 퍼져 모피 상인과 사냥꾼들이 베링 섬으로 몰려들었다. 1768년 마지막 남은 바다소 2마리를 죽였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그게 스텔러 바다소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다. 동료들이 사냥당하는 중에도 동료애를 발휘하여 곁을 떠나지 않다가 오히려 집단으로 도륙되었다는 스텔러 바다소가 인간에게 알려진 후 멸종하기까지는 불과 27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46억 년간의 지구 진화가 오늘날의 현생 인류를 만들었다면, 이제부터 지구의 미래는 인류가 만들어가야 한다. 이성이 작동하는 마지막 지점, 임계점에 이르기 전에 우리는 지금 어디쯤인지 되돌아 보아야 한다. 인간 활동이 직접적 원인이 되어 지구상에서 사라져 간 수많은 지구의 생명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종의 멸절을 눈 앞에 둔 친구들. 그들 중에 우리 인류가 포함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AFP ISSUE 2021.02>
외래종 토끼 몇 마리가 드넓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초원을 50년만에 황폐화시킨 일은 인간의 과도한 자연 개입이 예상치 못한 재앙을 불러올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면, 양쯔강돌고래는 인간 활동 그 자체만으로도 다른 생명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까지 5,000여 마리 수준이었던 양쯔강돌고래가 중국의 산업화로 양쯔강이 전력 생산과 수송 통로로 이용되고, 어류 남획까지 더해져 10여 마리로 줄어드는 데는 불과 50여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2006년 결국 양쯔강돌고래는 멸종이 공식적으로 선언되었고, 그 이듬해인 2007년 부랴부랴 ‘돌고래의 해’를 선포하여 이미 사라진 돌고래를 기념하였다.
놀이삼아 사냥하던 여행비둘기. 결국 1914년 멸종하였다.
더 비참한 사례는 미국의 여행비둘기이다. 19세기 중반 50억 마리로 조류 단일종으로는 지구에서 가장 많은 개체수로 추정되던 여행비둘기 가 노동자들의 값싼 식량과 부자들이 놀이삼아 즐기던 사냥으로 불과 수십 년만에 멸종되었다. 누가 한번에 가장 많이 잡는지 내기까지 벌어졌고, 한번에 800마리를 잡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저 사람들은 유희삼아 여행비둘기를 사냥하였다. 여행비둘기가 무리지어 이동할 때는 하늘을 다 덮었다지만 그 많던 개체가 이토록 짧은 시간에 멸종되리라고 그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기 시작한 1907년 뉴욕시는 여행비둘기를 사격장의 산 표적으로 쓰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이미 멸종으로 향한 임계점을 넘어섰고, 결국 1914년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사육되던 마지막 개체가 죽으면서 완전히 멸종하였다.
스텔러 바다소는 인간에게 발견된지 불과 27년만에 멸종하였다.
대형 바다 포유류였던 스텔러 바다소 의 경우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아주 짧은 시간에 멸종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덴마크 출신 탐험가 비투스 베링이 이끄는 캄차카 탐험대가 1741년 코만도르스키 제도의 무인도인 베링 섬에서 좌초되었다. 탐험대의 반 이상이 죽고 생존한 탐험대의 일원인 게오르그 빌헬름 스텔러(Georg Wilhelm Steller)가 작성한 보고서에는 그 섬에 살고있던 거대한 바다소의 존재가 포함되어 있었다. 고기는 송아지 고기맛이었으며, 기름은 아몬드 기름 같았고, 가죽은 고급 모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그의 관찰기는 금세 소문이 퍼져 모피 상인과 사냥꾼들이 베링 섬으로 몰려들었다. 1768년 마지막 남은 바다소 2마리를 죽였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그게 스텔러 바다소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다. 동료들이 사냥당하는 중에도 동료애를 발휘하여 곁을 떠나지 않다가 오히려 집단으로 도륙되었다는 스텔러 바다소가 인간에게 알려진 후 멸종하기까지는 불과 27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46억 년간의 지구 진화가 오늘날의 현생 인류를 만들었다면, 이제부터 지구의 미래는 인류가 만들어가야 한다. 이성이 작동하는 마지막 지점, 임계점에 이르기 전에 우리는 지금 어디쯤인지 되돌아 보아야 한다. 인간 활동이 직접적 원인이 되어 지구상에서 사라져 간 수많은 지구의 생명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종의 멸절을 눈 앞에 둔 친구들. 그들 중에 우리 인류가 포함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AFP ISSUE 2021.02>